나의 살던 고향은 김제이다.
초중고 시절을 오롯이 김제에서 보낸 토박이지만 벌써 70 고개를 넘어섰고 20대 초반부터 객지 생활을 전전하다 보니 고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기만 하다. 그래도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는 잠깐이라도 가끔씩 오고 가고 했었는데 지금은 기일이 되어서야 한두 번 찾아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은 왜 그리 넓었었는지, 그리고 여중·고를 걸어 다니는 길이 왜 그리 멀었었는지. 내 기억에는 그랬었는데 지금은 기억 속 그 큰 길들이 다 골목길처럼 느껴져서 어디 가나 딴동네다. 하기야 50여 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옛 모습은 이제 기록물에서나 찾아야 될 것 같다. 그 긴 세월 동안 서서히 변해가며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는 김제. 그래도 나의 살던 고향 김제는 언제나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살갑고 따뜻한 곳, 엄마의 품속 같은 곳이다.
연초라서 그런지 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따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더욱 간절한 것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강한 생활력으로 우리 5남매를 뒷바라지 하셨던 엄마,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이 내 고향 김제 곳곳에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제 곧 추운 겨울도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다. 화사한 봄꽃 같으셨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살아생전의 엄마를 그리며 몇 해 전 봄날 성묘길에 마음으로 불렀던 한 편의 시를 옮겨본다.
봄이 잰걸음으로 온다
생전에 가꾸시던 꽃나무들
뾰족뾰족 앞다투며 새순 돋는 모습이
부지런한 엄마를 꼭 닮았다
기관지가 약해서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
오랜 세월 병수발에 지칠 만도 했으련만
먼저 길 떠나는게 못내 걸려서
마음만은 곁에 두고 가신 듯
이른 봄을 깨우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매번 다음이 되어버린
같이 가보고 싶던
봄날 꽃구경
이번 성묘길에는
연분홍 치마처럼 흩날리는
금산사 벚꽃 아래서
꽃비라도 흠뻑 맞으며
젖어보련다
<꽃구경. 2020년 어느 봄날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백설희 님의 ‘봄날은 간다’ 노래는 친정엄마의 18번 곡이었다. 생전에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하셨던 친정엄마는 김제중앙장로교회를 섬기셨던 권사님으로 신앙심도 깊으셔서 새벽기도와 찬송을 쉬지 않으셨다.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면 경찰서 뒷길을 지나가게 되는데 자녀들을 위해 셀 수도 없는 소원의 기도를 가슴에 담고 수천 번 오고 가셨을 그 길 위에 아직도 간절했던 엄마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것 같다.
우리 5남매 자녀들은 지금은 큰 동생만 고향에 남아있고 모두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이제 막내까지 환갑을 넘긴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다들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별 탈없이 끈끈한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가족 간의 우애를 나누고 있다. 살아생전 끊이지 않았던 엄마의 기도는 또한 자녀들의 가정을 신앙의 가정으로 세우게 하셨으며 우리 다섯 남매들은 장로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각자의 교회를 섬기고 있다. 모든 것이 엄마의 간절했던 기도의 열매이며 우리 친정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리라.
몇 해 전엔 친정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해마다 엄마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우리 다섯 형제 자매들은 빠짐없이 모두 모여서 찬송과 예배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모두가 손을 잡고 엄마의 최애곡인 ‘봄날은 간다’를 엄마께 불러 드린다. 마치 엄마랑 함께 불러보는 것처럼.
한없이 넓고 푸르르며 끝없이 탁 트여 있는 곳. 너그러움과 평화와 풍요의 산실 같은 지평선의 품 안에서 자라온 나의 어린 시절과 엄마,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의 고향 김제! 7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내 고향 김제는 언제까지나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영원한 정신적 둥지가 되고 있다. 전직 교사 강주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