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7-20 21:34

  • 나의살던고향은 > 나의살던고향은

地平의 고향

기사입력 2026-02-01 16:03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은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 호남평야 금만경 들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많은 기억이 잊혔지만 아직도 수많은 희로애락의 추억들이 곳곳에 서려 있을뿐더러 돌이킬수록 그리운 동무들이 함께 옹기종기 살았던 곳이었다.

봄이면 동네 아이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삐비도 한 움큼씩 뽑아 쥐고 까먹으며 갔던 등굣길의 기억과 보리피리나 풀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던 하굣길의 소중한 향수가 생생한 고향이다.

여름에는 가까이에 능제방죽이라는 아주 넓은 저수지가 있어 자연스럽게 멱감기나 낚시를 즐겼고 가을에 접어들면 주변으로 붉은 연밭이 끝없이 펼쳐져 마치 부처님의 연화세계에서 사는 듯한 소중한 체험도 했었다.

그리고 빼놓을 없는 가을의 진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지평선 들녘과 농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오색 코스모스 길이 생생하여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리다.

시절에는 어찌 그렇게도 가난하고 어려웠을까 요즘과는 너무도 다르게 전기불이나 TV 아예 없었고 아마도 내가 중학교 마치고 익산으로 고등학교 갈 때쯤 전기가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나마 세상과의 소통이라야 고작 밧데리를 동여맨 트랜지스터 라디오뿐이었는데, 그 시절은 아마도 6.25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그랬을 것이다.

生如離巢(생여이소)라는 말처럼 삶이란 둥지를 벗어나는 일인가. 졸업 후 열아홉엔가 인천으로 올라와 어언 칠순 고희가 지났다. 그래서인가 鄕愁胸懷(향수흉회) 하였듯 늙어갈수록 마음은 고향 그리는 향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陳中吟(진중음) / 충무공 이순신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임금님 수레 서문 밖 멀리 가시고
君儲北地危(군저북지위) 동궁들도 북쪽에서 위태롭구나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여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장수들아, 몸 바쳐 공훈을 세울 때로다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도다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오랑캐 남김없이 멸할 있다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죽음이야 어찌 사양하리                       
(
인천에서 서예가 봉강 최규천)
 

 

 

 

(kimjenew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