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은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 호남평야 금만경 들이다.
이제는 긴 세월이 흘러 많은 기억이 잊혔지만 아직도 수많은 희로애락의 추억들이 곳곳에 서려 있을뿐더러 돌이킬수록 그리운 동무들이 함께 옹기종기 살았던 곳이었다.
봄이면 동네 아이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삐비도 한 움큼씩 뽑아 쥐고 까먹으며 갔던 등굣길의 기억과 보리피리나 풀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던 하굣길의 소중한 향수가 생생한 고향이다.
여름에는 집 가까이에 능제방죽이라는 아주 넓은 저수지가 있어 자연스럽게 멱감기나 낚시를 즐겼고 가을에 접어들면 주변으로 붉은 연밭이 끝없이 펼쳐져 마치 부처님의 연화세계에서 사는 듯한 소중한 체험도 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가을의 진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지평선 들녘과 농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오색 코스모스 길이 생생하여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리다.
그 시절에는 어찌 그렇게도 가난하고 어려웠을까 요즘과는 너무도 다르게 전기불이나 TV가 아예 없었고 아마도 내가 중학교 마치고 익산으로 고등학교 갈 때쯤 전기가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나마 세상과의 소통이라야 고작 밧데리를 동여맨 트랜지스터 라디오뿐이었는데, 그 시절은 아마도 6.25 전쟁이 끝난 몇 해 직후여서 그랬을 것이다.
生如離巢(생여이소)라는 말처럼 삶이란 곧 둥지를 벗어나는 일인가. 졸업 후 열아홉엔가 인천으로 올라와 어언 칠순 고희가 지났다. 그래서인가 鄕愁胸懷(향수흉회)라 하였듯 늙어갈수록 마음은 늘 고향 그리는 향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陳中吟(진중음) / 충무공 이순신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 임금님 수레 서문 밖 멀리 가시고
君儲北地危(군저북지위) 동궁들도 북쪽에서 위태롭구나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여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 장수들아, 몸 바쳐 공훈을 세울 때로다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도다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 오랑캐 남김없이 멸할 수 있다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 이 한 몸 죽음이야 어찌 사양하리
(인천에서 서예가 봉강 최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