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김제다.
본적(本籍)은 백산면이고, 태어난 곳은 읍내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는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계셨다. 한여름인데도 선풍기 하나 없이 난닝구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다. 위로는 형과 누나가 한 분씩 있었다. 곧 가을이 왔고 겨울이 지났으니, 1957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집 앞에는 늘 중고 자전거 대여섯 대가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고치며 생계를 일구셨는데, 참으로 부지런하셨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면 주무셨고, 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일어나셨다. 나는 그 옆에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배웠다. 바퀴가 돌아가야 길이 열리듯, 사람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훗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일곱 남매를 키울 수 없었노라고. 실제로 우리 형제는 모두 고등학교까지는 다녔다. 반면 옆집에 살던 내 친구 칠성이와 공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복집에 기술을 배우러 들어갔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자식이 많았다. 대부분 여섯, 일곱 남매였고 적어도 다섯은 되었다. 이것이 훗날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게 된 원동력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의 피와 땀, 눈물을 우리 후손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한 삶이었으니, 하나님의 은혜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부모 슬하에 있었다. 가난했지만 궁색하지는 않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버틸 만했다. 학업 성적은 늘 우리를 압박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시절 김제는 나의 세계 전부였고, 세상은 늘 그만한 크기였다.
나는 스물여덟에 결혼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전주로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지만 행복했다. 퇴근길이면 아내는 차부로 마중을 나왔고,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아내는 그날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그 시절 아내는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다. 특히 음식을 만들 때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머님께 배웠다면서 말이다. 나는 몰랐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그렇게 좋은 줄을 말이다.
아내는 장사 수완이 좋았다. 아버지가 외출하신 사이 가게를 맡으면 자전거를 서너 대씩 팔아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무척 좋아하셨다. 하루 한 대 팔기도 어려웠는데 서너 대라니. 아버지의 흥정은 태반이 불발이었지만 아내의 흥정은 반드시 성사였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슬쩍 가게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아내는 열심히 팔았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러다 딸이 태어났고, 돌이 지나자 우리는 분가를 허락받았다. 그때부터 타향 객지에 뿌리를 내렸다. 삶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고향을 멀리 데려갔다. 도시의 시간은 빠르고, 사람들의 얼굴은 늘 바빴다. 그 속에서 나는 살아갔고, 살기 위해 애썼다. 고향은 마음속에만 남아 점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굳어 갔다.
전주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겼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매달 한 번씩은 내려갔다. 그날만큼은 길이 멀지 않았으니 부모님의 함박웃음이 곧 피로회복제였다. 그때의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김제는 여전히 내가 돌아갈 곳이었다.
이제는 갈 일이 없다. 부모님이 떠나신 뒤, 고향은 그대로인데 고향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집도 ‘김제 동헌’을 문화재로 보전해야 한다며 헐어 버렸다. 나는 김제에 갈 때마다 옛 우리 집 터를 찾고, 김제 동헌에도 들른다.
김제 동헌은 내 놀이터였다. 조선시대 지방 관아였다가 해방 이후 김제읍사무소로 사용되었고, 이사한 뒤에는 예식장이 되었다가 훗날 다시 ‘김제 동헌’으로 복원되었다. 예식장이던 시절, 나는 친구들과 그곳에서 참 많이 놀았다. 주인은 우리를 쫓아내느라 늘 바빴다.
지금 고향에는 자전거포를 잇고 있는 남동생이 산다. 사자탑 근처에서 말이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기술과 삶을 이어받아 여전히 자전거를 고치고 있다. 돌아가는 바퀴 소리 속에 우리 집안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나는 멀리서 그 사실만으로도 고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안다.
언젠가 나도 이 삶을 내려놓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백산면 남산리 선영에 묻혀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결국 그곳이 시작이었고, 끝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부모님 아래로 우리 형제들이 차례로 누울 것이다.
타향에서 보낸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마지막 길은 고향으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고향은 더 이상 자주 찾는 곳은 아니지만, 늘 마음 한가운데 있다. 떠나 있어도 떠난 적 없는 곳, 돌아갈 수 없어도 돌아가 있는 곳. 나의 살던 고향은 지금도 그렇게 조용히 나를 품고 있다. 수필가(서울지방병무청 퇴직) 강준구